1월 19일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많은 이들이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해 국내 유통, 관광 산업의 현대화를 구축하는 등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국적 논란, 경영권 분쟁 등의 논란으로 순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어째서 이러한 논란이 생기게 된 걸까?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롯데그룹 역사를 한번 ‘집중 재조명’해보자.

일제강점기, 성공을 위해 밀항하다

1921년 울산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밀항하여 학업을 이어나간다. 당시 성실함을 인정받아 거금의 투자를 받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전쟁 폭격으로 인해 두 번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시도한 비누, 샴푸를 제조 판매하는 유지류 사업이 성공하게 된다.

당시 사업을 정리하며 얻은 돈으로 유지류나 특수고무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소를 차린다. 이곳에서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당시 판매되는 모든 껌을 씹어보며 껌을 개발한다. 그가 만든 껌은 주변 상회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를 발판 삼아 그는 본격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여 껌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때의 회사가 현 롯데그룹의 모체인 롯데이다.

의도치 않은 롯데그룹의 탄생

롯데는 일본 시장에서 TV 광고 같은 홍보매체를 적극 활용해 일본 껌 시장점유율의 70%까지 차지한다. 그런데 때마침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교가 정상화된다. 당시 해외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던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눈에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외자도입법에 따라 지원해줄 테니 고국에 투자하라 권유했다. 이에 신 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고급 호텔이 없어 국빈 대접이 어려웠던 박정희 대통령은 故 신격호 명예회장을 통해 고급 호텔을 세울 계획을 한다. 당시 껌 제조과정에서 쇳가루가 발견되면서 롯데제과는 3개월 제조 정지 명령을 받는다. 이때 대통령의 권유로 그는 1973년 ‘호텔롯데’를 설립한다. 6년 뒤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으며 1979년 ‘롯데호텔 서울’이 준공된다.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건설 중에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쇼핑센터를 건설하겠다는 명목으로 정부에게서 백화점 건설을 허가받는다. 이후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건립하면서 롯데는 제과업에서 유통업, 서비스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고 유통업을 통해 롯데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롯데제과 또한 인수합병을 통해 종합 식품사업 군을 구축시켰다.

롯데그룹 국적 논란과 개인사

하지만 긴 시간 동안 롯데는 국적 논란으로 언론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한국 롯데 계열사들의 지배 구조 정점에 있는 것은 호텔롯데이다. 그런데 호텔롯데의 최대주주가 일본 롯데홀딩스라는 점이 공개적으로 밝혀지며 일본 기업이 아니냐며 문제가 되었다. 이외에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논란에 불을 붓게 된다. 이는 후계자들의 국적 문제와 공개된 녹취에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모습 등 한국보다는 일본 문화에 가까운 생활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악화되었다.

또한 롯데 경영권 분쟁은 롯데판 왕자의 난으로 불릴 정도로 큰 화제였다. 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뒤를 이를 후계자 자리를 두고 두 아들이 소송과 자료들을 여론에게 공개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신동주 에스디제이 회장의 편을 들었으나 무게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쏠리게 된다. 이때 신격호의 이사진 배제 인사안이 통과됨에 따라 약 70년간 이끌었던 신격호 체제가 결국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향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2013년까지 매년 5월 고향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를 찾아 마을잔치를 열었다. 생가가 있던 이 마을은 1970년 대암댐 건설과 함께 수몰되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인근의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1971년부터 자비를 털어 해마다 주민들과 그 가족들을 불러 마을 잔치를 열었다. 또한 수몰된 고향을 그리워하며 어쩔 수 없이 흩어진 친척들에게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세운 ‘롯데’라는 브랜드는 건재하다. 식품, 유통, 화학, 건설, 제조, 관광, 서비스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롯데제과는 제과와 음료, 주류, 식품 소재와 가공식품, 외식을 아우르는 국내 최대의 식품 기업군으로 성장했다.

또한 유통부문과 관광ㆍ서비스 부문에서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호텔롯데, 롯데월드 등 수많은 계열사를 만들어내면서 현재 재계 순위 5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故 신격호 회장의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그가 대한민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