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은 국내 기업의 암흑기와도 같다. 잘나가던 대기업 역시 외환 위기를 버텨내지 못하고,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청구 그룹 역시 그중 하나다. 한대 건설업계의 주역으로 평가받았던 청구 그룹 역시 IMF를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의 아파트는 아직까지 전국 곳곳에 남아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재계 순위 35위’에 등극했던 청구 그룹은 어쩌다 몰락의 길에 오르게 된 것일까.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대구 중추 기업으로 우뚝

장수홍 회장은 부산대 섬유공학과 재학 당시 일본어 공부를 위해 펼친 건축잡지에 빠져들게 된다. 주택 사업에 관심이 생긴 그는 졸업 후 1973년, 대구에 ‘청구주택 개발공사’를 세운다. 자본금 2,000만 원과 직원 12명뿐이었지만 단독주택 건설을 통해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갔다.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 붐이 일기 시작했고, 장수홍 회장은 1978년부터 ‘청구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사업에 돌입한다.

장수홍 회장의 선택이 통했다. 1981년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지역 내 개발이 가속화되었다. 청구는 대구 시내를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를 설립해 나갔고, 분양에도 긍정적인 성적을 거둔다. 이렇게 경북권 중추 기업으로 떠오른 청구주택은 1982년 서울에도 지사를 세우며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아파트 이어 백화점까지 승승장구

청구의 본격적인 서울 진출은 1986년 중계동 청구아파트부터다. 지방업체로서는 첫 도전이었지만 청구아파트는 청약 경쟁률 37:1을 기록하며, 청구가 전국적인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뒤이어 1989년 신도시 사업이라는 호재도 겹쳐 최고의 전성기도 누릴 수 있었다. 기세를 몰아, 1980년대 삼양코아, 청구조경, 청구개발산업 등의 계열사도 설립하며 점차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간다.

뒤이어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한다. 방송·영상 부문에 대구방송과 파라비전을 출범하고, 왕십리역사백화점 사업 주관자로 선정되며 유통 업계에도 손을 벌린다. 1996년엔 현재 롯데백화점 분당점 자리에 ‘블루힐 백화점’도 개관한다. 총 1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청구그룹은 단숨에 재계 서열 순위 35위에 오른다. 장수홍 회장 역시 700만 원의 월급으로 총수 월급 순위 10위 권에 들며, 청구그룹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인정받는다.

굴욕적인 2번의 부도

그러나 무리한 몸집 불리기는 결국 청구그룹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청구그룹은 일산 신도시에 ‘오디세이’라는 주상복합을 분양 중이었다. 3일 만의 완판으로 위기를 비껴가는 듯했으나, 주택 시장의 불황을 이길 수는 없었다. 빚이 점차 불어난 청구 그룹은 자금난으로 인해 끝내 부도에 이른다.

이듬해 1998년엔 장수홍 회장의 비리도 밝혀진다. 그는 동생 자택 장롱에 80억 원이 든 통장과 계열사 왕십리역사 백화점의 주권 40억 원을 숨겨두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수홍 회장이 정·재계 인사들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준 혐의도 드러났다. 장 회장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청구 그룹의 신화도 막을 내린다.

장수홍 회장이 물러가고 나서도 청구는 회생을 위해 노력한다.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매각하면서까지 시공권을 따내려 했지만, 남아 있는 9천억 원의 빚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이후 2006년 청구그룹은 박종홍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새 브랜드 ‘청구 지벤’으로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린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청구의 재기는 처참히 실패했다. 전국에서 시행 중이던 아파트 건설 사업은 모두 무산되었고, 청구는 2010년 7월 2번째 부도를 맞이한다. 청구가 착공에 들어갔던 김포 청구지벤은 청구의 부도로 인해 3년간 방치되면서 김포의 흉물이라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2015년 청구는 오랜만에 뉴스에서 소식을 전했다. 장수홍 회장이 1993년부터 내지 않고 있던 252억 3,200만 원의 세금 때문이다. 블루힐 백화점도 95억 5,000만 원으로 고액 체납에 이름을 올리며, 청구의 몰락을 상기 시켜 주었다. 선단식 경영으로 결국 공중분해 되었지만, 이들의 아파트가 여전히 튼튼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은 청구 그룹이 과거 건설업계에서 지녔던 명성을 되새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