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의 위상이 변화하고 있다. ‘게임계 메시’라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은 벌써 수십억대 연봉을 돌파했다. 롤드컵 우승 상금이 74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항간에 떠도는 50억 연봉이라는 소문도 설명이 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프로게이머라는 명칭도 존재하지 않을 때 상황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프로게이머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그 시절에도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선수들이 있다. 당시 대기업 임원급의 연봉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2000년대를 휘어잡았던 프로게이머들의 현재 근황을 알아보도록 하자.

최초로 억대 연봉, 임요환

임요환은 국내 최고의 프로게이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1999년 데뷔한 그는 2000년 게임큐 우승을 시작으로 국내 대회를 석권해 나간다. 업계 내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는 선수였지만, 2002년 11월 동양제과와 스폰서 계약을 맺으며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돌파한다. 계약한 연봉은 1억 6,000만 원으로, 대회 상금과 광고모델료를 합하면 연봉은 2억 원대로 올라간다.

이러한 기세는 임요환이 은퇴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2013년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한 그는, 입문 5년 차가 되던 2018년 다시 한번 억대 연봉 반열에 오른다. 임요환이 2018년 포커 대회 우승으로 얻은 상금만 무려 1억 4,000만 원가량이다. 2019년에는 국제 대회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는 각종 방송과 게임 모델로 활약하며 추가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2등도 최고 대우, 홍진호

매번 아쉬운 준우승을 했던 홍진호는 억대 연봉 순서도 두 번째였다. 임요환이 동양제과와 계약을 체결하고 한 달 뒤, 홍진호도 연봉 7,000만 원·보너스 3,000만 원의 조건으로 KTF와 연을 맺었다. 2004년에는 3년간 4억 원의 보수를 받는 계약을 체결하며 게임 선수 이인자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해나간다.

(우) IFMP 아시안 네이션스컵 2019 1,2위를 차지한 임요환과 홍진호 / asistoday

은퇴 후 프로게이머 감독으로 활약했던 홍진호는 2013년 방송의 길에 접어든다. 초반에는 ‘더 지니어스’와 같은 추리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하였으나, 점차 각종 예능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넓혀가며 방송인으로 자리 잡는다. 지난 2019년부터는 임요환 선수와 함께 한국 포커협회 대표팀으로 출전하면서, 포커 플레이어로서도 맹활약 중이다.

임요환의 적수, 이윤열

이윤열은 2003년 4월, 국내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프로게이머 스타 반열에 오른다. 상금과 인센티브를 포함해 1억 원의 연봉을 넘는 수준이었지만, 2004년 팬택&큐리텔과 3년간 6억 원의 연봉을 계약하며 임요환과 맞먹게 된다. 은퇴 후에는 개인 방송을 통해 게임과의 연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도 개인 방송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윤열 역시 이 점을 느껴, 개인 방송을 계속하며 ‘게임 기획자’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현재 그는 엔젤 게임즈의 게임 기획자로 근무 중이다. 지난 2020년 1월 얼리 엑세스로 발매된 ‘프로젝트 랜타디’가 이윤열이 기획에 참여한 게임이다.

2등 자리 꿰찬 박정석

박정석은 2001년 데뷔 후 1년간 우승 기록이 전무했다. 그러나 2002년 열린 SKY 스타리그에서 임요환과 홍진호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박정석은 KTF와 3년간 3억 9,000만 원의 계약을 맺으며 억대 연봉 프로게이머 대열에 합류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중소기업에 취직하며 직장인의 삶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게임 감독으로 복귀한다. 지금은 개인 방송을 통해 근황을 알리고 있다.

3대 프로토스, 강민

임요환을 여러 차례 격파하며 유명해진 강민 역시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특히 2004년 전후 큰 활약을 펼쳤는데, 이때 홍진호, 이윤열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KTF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강민은 프로게임 사상 최초로 3년간 연봉 3억 3,000만 원이라는 다년 계약을 맺게 된다.

그는 다른 게이머들과 달리 은퇴를 공식 선언한 적은 없지만, 2008년 돌연 ‘해설 위원’으로 등장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선수보다는 해설 위원으로서의 면모를 계속 보여준다. 최근엔 각종 게임 행사에 얼굴을 비추며, 유튜브와 아프리카 TV 등 개인 방송에만 주력하는 중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했던 2000년대 초반. 지금도 쉽지 않은 ‘억대 연봉’을 받았다는 것 자체로 선수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프로 게임 자체를 알리려고 했던 노력을 알기에 이들의 화려한 과거가 더 빛나는 건 아닐까 싶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