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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의 근황이 심상치 않다.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은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개그 프로그램은 현재 5%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희극인들은 점차 설자리가 없어져 가는 추세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때 전 국민을 웃음에 빠뜨린 희극인들의 근황이 화제가 되고 있다. “천박해 천박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희극인 임혁필도 그중 하나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현재 모습은 어떨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5년간의 무명끝에 대세 등극

1996년 임혁필은 대학교 후배 박성호와 함께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 도전했다. 워낙 경쟁률이 높아 재수, 삼수가 기본이었지만, 그는 단번에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료들과 달리 입담이 화려하지도, 뛰어난 개인기가 없던 임혁필은 개그계를 전전하여 데뷔 후 5년간 긴 무명 생활을 거친다.

무명이었던 임혁필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다. 그는 개그콘서트 코너 ‘그렇습니다’에서 땅끄지 역할로 서서히 얼굴을 알려가다, ‘봉숭아 학당’의 세바스찬 캐릭터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세바스찬 주니어 3세라는 자기소개부터, ‘천한 것들’, ‘나가 있어’, ‘천박해, 천박해~’ 등 임혁필이 내뱉는 대사는 모두 유행어가 되었다.

인기에 힘입어 임혁필은 유행어로 수많은 CF 주인공으로도 발탁된다. KFC, 해태 써니텐, 하이마트 등 그가 2004년까지 출연한 광고만 10편이다. 전성기 시절 한 달 수입은 무려 5,000만 원으로, 30만 원으로 생활하던 무명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액수다. 덕분에 임혁필은 당산동에 위치한 강변삼성아파트 매입에도 성공하여,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웃음 주던 개그맨의 반전 과거

사실 임혁필은 청주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미대생이다. 개그맨이 된 후 붓을 내려놨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은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육아 전문 사이트에 우리아이닷컴에서 ‘세바스찬 혁필의 육아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2007년엔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와 육아 만화 에세이도 출간한다.

개그 활동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에세이를 내던 해, 프로그램 <웃음충전소>, 영화 <좋지 아니한가> 등에 출연하며 여전히 자신의 끼를 뽐냈다. 그러나 방송보다는 미술 작품 활동과 공연에 더 집중하며 점차 대중들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렇게 임혁필이라는 개그맨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 즈음, 2010년 ‘양악 수술’이라는 의외의 소식으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다. 해당 수술은 미용이 아닌 부정교합 치료를 위해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계기로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자신의 근황을 드러냈다.

독학으로 습득해 강연까지

수술만큼 화제가 된 건 임혁필이 정식 화가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2010년 첫 번째 개인전을 열며 ‘아트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그는, 같은 해 샌드 아트에 매력에 빠지게 된다. 영상을 찾아 독학으로 배운 것이었지만 미술학도의 실력이 드러났다. 각종 공연과 강연에서 먼저 찾는 샌드 아티스트로 성장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공개 코미디의 전성기를 누렸던 개그맨으로서 ‘개그’를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9년부터는 개그우먼 권진영과 함께 ‘대단해요’라는 코미디 채널도 운영 중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 본질을 개그맨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다양한 곳에서 개그를 보여주는 것이 개그맨의 할 일이 아닐까 싶다.”라 말하며, 개그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개그맨에서 화가로 변신한 임혁필. 그의 근황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과거 인기를 끌었던 개그 코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젠 개그맨보다는 아트테이너의 이미지가 더 커졌지만, 그의 바람처럼 세바스찬과 같은 레전드 캐릭터를 공연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