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기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국내 주력 사업에 일찍이 뛰어든 덕에, 숱한 경제 위기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LG 역시 마찬가지다. 화학 공업사로 시작한 LG는 이후 전자 산업으로 손을 뻗어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꽃길만 걸었을 것 같건만, 사실 LG 그룹에도 절대 잊지 못할 한 가지 사건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LG의 ‘한’으로 남았다는 이 사건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충격을 준 것일까? 그 내막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반도체, 국내 기업의 자존심

(좌) 1989년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품, (우) 금성반도체의 외장형 모뎀 지면 광고 / donga

1989년 금성사(LG그룹의 전신)는 삼성전자를 따라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반도체 시장이 매우 호황기었기에 국내 4대 전자사는 모두 반도체 사업에 몰두하며 실적을 쌓아갔다. 금성반도체도 승승장구하는 기업 중 하나로, 1989년 바이플라소자 분야에서만 3,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17위 자리에 올라선다.

(우) 1997년 LG 반도체 벤처 팀이 제작한 멀티미디어 칩

금성반도체는 LG 반도체로 사명을 바꾼 후, 이러한 기세를 이어나갔다. 1995년 순이익만 무려 9,000억 원이다. 같은 해 삼성전자의 전체 수익이 3조 2,000억 원이라는 점을 보면, LG 반도체가 반도체 사업만으로 엄청난 성과를 냈다는 것이 짐작 가능하다.

국내 기업의 기술력은 세계 시장에서도 빛났다. 1997년 말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18.8%로 1등이었다. NEC와 현대전자, 히타치, 마이크론, LG 반도체가 그 뒤를 이으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저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좌) IMF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발표 중인 임창열 경제부총리

그러나 1997년은 반도체 산업이 불황에 접어들던 시기였다, 세계 시장 점유율과 달리, 국내 기업의 속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미 현대전자는 1,835억 원, LG 반도체는 이보다 큰 2,897억 원의 손실을 보며 적자 상태에 들어서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경제 위기까지 불어닥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논란의 ‘반도체 빅딜’

(좌) 1998년 12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빅딜 내용을 들은 5대 그룹 총수들

1998년 정부는 ‘빅딜’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한다. 기업 간 빅딜을 통해 부채는 물론 재벌들의 과잉 시설을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꼽은 과잉 투자 산업은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의 7개 업종으로, 대상 기업은 삼성과 LG, 대우, 현대, 한진 5대 그룹에 국한되어 있었다.

빅딜은 순위에 따라 인수가 결정되기에, 기업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논란이 된 건 반도체 부문이다. 반도체는 호황-불황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사업으로, IMF 전까지 수많은 기업에 이익을 안겨줬었다. 훗날 반도체 시장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인수된 기업에게 돌아간다.

1999년 5월 20일 LG 반도체와 현대전자의 주식 양수도 계약 체결 현장

반도체 빅딜의 주인공은 적자를 피하지 못한 현대전자와 LG 반도체였다. 두 기업 모두 결정은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지만, 국민의 목소리와 정부의 압박에 결국 양해각서를 교환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경영권’이었다. 현대는 70% 이상의 지분을, LG는 공동경영을 주장하며 각사의 의견이 엇갈렸다.

자포자기한 LG,
반도체를 떠나보내다

빅딜은 반대하는 LG 반도체 직원들의 시위 현장

계속해서 합의가 불발되자 빅딜을 처음 제안한 전경련이 개입했다. 전경련은 전문 평가 업체 심사를 통해 경영 주체와 70%의 지분을 누가 가져가는지를 결정하는 조정안을 내세웠다. 그러자 두 기업의 눈치싸움이 시작됐다. 평가 업체 선정을 위해 협상에 들어갔지만, 서로에게 우호적인 기관을 채택해 제대로 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ADL 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는 LG 반도체 구본무 사장 / mk

쉽게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전경련이 추천한 미국 ADL이 평가 업체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LG의 불신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LG 반도체는 평가 항목의 기준과 명확성을 요구하며 평가 위임 계약을 거부했다. 결국 ADL은 이전에 공개된 자료만을 토대로 평가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도 정부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5대 재벌 기업 중 한 곳이 반도체에 집착하고 있다.”며, LG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어서 빅딜을 따르지 않는 기업에게는 대출을 중단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도 내비친다.

갈등 속에서도 평가는 진행되었다. 1998년 12월 24일, ADL은 현대전자가 다수의 평가 기준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전자가 반도체 통합사의 경영 주체로 선정된 것이다. 당연히 LG 반도체는 이러한 결과를 승낙하지 않았다. ADL의 검증 과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합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현재 금융감독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구본무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1999년 1월 청와대 집무실에 들어선 구본무 회장은 “반도체는 선친이 물려주신 사업입니다.”라며 빅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뒤이어 국가 경제를 위해 지분 전체를 넘기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구본무 회장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빅딜이 최악이라 꼽히는 이유

1999년 1월, 빅딜 관련 협상을 마치고 나오는 구본무 회장과 정몽헌 회장 / donga

LG의 결단에 의외로 현대전자는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LG 반도체의 지분 전체를 매수할 현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기업이 제안한 인수 가격은 액수 차이가 엄청났다. LG는 매도 가격으로 6조 5,000억 원을 불렀다. 현대가 생각한 1조 원과 무려 5조 5,000억 원의 괴리감이 있는 금액이다.

LG는 금액을 4조 원으로 낮췄으나, 현대는 강경했다. 1조 2,000억 원 이상으로 높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협상 자리에 있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중재에 나섰다. 그는 두 기업이 최종 제안한 금액의 평균인 2조 6,000억 원을 인수 금액으로 제안했다.

(좌) 통합법인 출범 전, LG 반도체 청주공장을 찾은 현대전자 정몽현 회장

다행히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현대는 LG 반도체 인수 금액에서 1조 5,000억 원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대신, 나머지 금액을 4년에 걸쳐 갚아나가기로 한다. 이때 1조 5,000억 원 중 5,000억 원은 데이콤을 비롯한 통신 산업 주식으로 대체하게 된다. 빅딜이 ‘최악’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이 협상때문이다.

현대는 LG 반도체 덕에 반도체 품목을 다양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발행한 회사채로 인해 자금난에 빠지게 되면서 반도체 호황기에 제대로 된 투자를 진행할 수 없었다. 여기에 램버스 D램의 고전이 현대전자에 치명타를 입혔다.

LG 반도체는 램버스 D램을 주력으로 내세우던 기업으로, 이를 인수한 현대전자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현대전자는 자금난과 실적 악화로 허덕이다, 2001년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된다.

LG도 손실을 입은 건 마찬가지다. LG는 빅딜의 대가로 현대의 데이콤 지분을 인수했다. 덕분에 유무선 통신업을 모두 겸하게 되면서, 숙원사업이었던 ‘종합정보통신그룹’으로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과 달리 데이콤의 경영 부실은 심각했다.

데이콤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LG는 본업인 화학과 전자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빅딜이 LG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뚜렷해지는 순간이다.

LG 반도체는 현대전자(하이닉스)의 워크아웃 이후 SK에 인수되었다. 현재 SK 하이닉스가 세계 반도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을 볼 때, LG가 반도체 빅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점이 이해간다. 물론 LG가 반도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2014년 LG는 시스템 반도체 회사 실리콘웍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던졌다. 실리콘웍스는 국내 팹리스 업계 매출액 1위로,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LG의 여전한 아픈 손가락, 반도체. LG가 실리콘웍스와 맞잡은 손을 계기로 과거의 설음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