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서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광화문 혹은 63빌딩이었다. 그치만 2016년 제2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서 서울하면 제2롯데월드타워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제2롯데월드타워 사진이 앞다투어 자신의 전경을 뽐내고 있다.

높이만 555m로 123층에 달하는 빌딩을 지은 그룹은 롯데이다. 롯데는 대한민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 근거지를 둔 대기업이다. 이렇게 규모가 큰 빌딩을 지은 롯데에겐 실패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데, 롯데에게도 실패한 사업이 있다. 1999년 청산 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게임산업이다. 어떤 사연인지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자.

롯데, 게임 산업에 손을 대다

90년대 신촌 오락실

1997년 당시 국내 오락기 시장은 2조 원, 2000년에는 10조 원이 넘는 황금시장이었다. 오락시장이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던 때 롯데는 야심차게 전자오락 사업에 진출하였다. 세계적인 게임기 업체 일본 세가사와 손을 잡은 것이다.

고봉산업의 부도 후 롯데그룹과 세가사는 각각 50%씩 1백10억원의 자본금을 출자하여 ‘롯데세가’를 설립하였다. 당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도시형 테마파크 사업 진출을 목표로 대형게임기 중심의 첨단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자오락실 체인점 모집에 나섰다.


서울 강남에만 300평 규모의 직영점 2곳을 개장하였다. 대당 10억 원이 넘는 중대형 첨단 입체 오락기 등이 설치되었다. 97년 당시 롯데세가는 매장면적이 100평이 넘는 전국 200개 오락실을 집중 공략하여 연내 점포를 20여개로 늘릴 야심찬 계획을 하고 있었다.


세가 게임즈라고 하면 지금 어린세대들에게는생소할 것이다. 그치만 1980~1990년대 이하생들에게는 세가의 게임들은 꽤 친숙하다. 대표적으로 <세가소닉>, <버추어 파이터>를 들 수 있다.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보던 하얀 바탕에 하늘색 SEGA로고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락게임의 붐이라는 상황을 직시한 우리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게임 세가사와 함께 게임산업에 진출하였다. 롯데 이전에는 삼성전자가 1989년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겜보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하였으며, 1996년 고봉산업은 버추얼 파이터3를 수입하며 사업에 진출해 나갔다.

오락게임의
황금기에서 폐업으로…

롯데가 세가사와 합작할 1997년 무렵, 우리나라는 오락게임 산업의 황금기였다. 당시 국내 오락 시장은 2조 원에 달했고 2000년에는 10조 원이 넘어서고 있었다. 그치만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달도 차면 기울듯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오락실 업계는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97년 <세가 새턴>을 마지막으로 판매 부진을 이유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고봉산업은 IMF 여파로 결국 부도를 맞게 되었다. 롯데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3,000평의 대규모 테마파크를 수도권에 세운다며 큰소리 떵떵 치며 사업을 시작할 때와 다르게 롯데세가는 1999년 청산 후 2000년에 폐업하였다.

몰락의 이유는?


롯데세가를 비롯한 아케이드 사업의 몰락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작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었다. 스타크래프트로 인해 PC방이 붐을 이루었고 MMORPG 등 온라인 게임, 게임 다운로드 등으로 오락게임을 대체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등장하였다. 그 결과 오락실을 찾는 사람이 줄었고 이는 2000년대 중반 아케이드 업계 고사로 이어졌다.

2020년 기준 그나마 드물게 남아 있었던 100원~300원짜리 영세한 오락실은 아예 전멸하였다. 그대신 홍대나 건대 등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 테마파크형으로 VR방, 다트장 등과 함께 융합되어 현재 남아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만 자산 108조 9000억원에 달하는 롯데도 모든 것을 알 순 없었다. 오락 사업은 시대의 냉정한 변화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쓰디 쓴 실패가 자양분이 되어 현재 재계 순위 5위에 빛나는 롯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