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현재 여성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여직원들을 간부나 임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사다리를 놓는 데 힘쓰고 있다.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과 같은 재벌 2세 여성 CEO들이 전면 나서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임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작고한 부군을 대신하여 CEO의 자리에 오른 자가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다섯 번째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30여 년을 살다 하루아침에 경영 무대에 소환된 현정은 회장. 위기 때마다 정면 돌파한 그녀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정주영 명예회장의 다섯 번째 아들 정몽헌 회장과 1976년 결혼한 현정은 회장은 결혼 이후 30년 가까이 가정주부로 지냈다. 가정주부로 있을 때에는 한 번도 회사 경영에 참여한 적 없이 가정에만 안주하였다. 그런데 2003년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현 회장이 그룹 총수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정몽헌 회장의 미망인이 현대그룹의 리더가 될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현대 그룹은 형제들의 싸움으로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정몽헌 회장의 자녀들은 그룹을 맡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에 현대그룹 경영권의 공백에 대한 우려는 날로 높아졌다.


당시 현대는 계열사 분리를 거쳐 재계 1위에서 15위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그때 공식 석상에 정몽헌의 아내 현정은이 그룹의 총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잃은 지 두 달도 채 안 된 상태였다. 이때부터 현 정은은 현대가 회장으로서 가시밭길이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대가의 며느리에 대한
독특한 문화

현대가의 식사 모습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며느리 중 현정은 회장을 가장 아꼈다. 재계에서 유교적 가풍으로 유명한 현대는 유독 엄격하기로 알려져 있다. 결혼 과정에서 시댁살이까지 독특한 며느리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 씨 집안에 들어오면 며느리들은 살림에만 신경 써야 했다.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마라’, ‘조심스럽게 행동하라’ 등의 수칙 7계명은 물론 새벽 3시부터 기상 그다음에 밥상 준비를 한다. 새벽 5시에 아침식사를 다 같이 하지만, 며느리 겸상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허락이 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범현대가 며느리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정은 회장의 결정은 이례적이었던 것이었다. 현 회장이 그룹 총수를 선택한 것에는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었다. 현대가의 며느리임과 동시에 뛰어난 엘리트 집안의 자제였기 때문이다. 현대가 못지않게 유수한 사업가 집안이었다.

현 회장은 전 신한해운 회장 아버지와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인 어머니의 차녀로, 경기여고와 이화여대를 졸업한 재원이었다. 기업가 집안의 피를 물려받고 부모님의 어깨너머로 배운 기업 경영, 남편 정몽헌 회장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보았던 것이 현대 그룹을 이끄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적통성 내세운
‘시숙·시동생의 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시작된 현정은 회장의 행보는 두 번의 위기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이른바 시숙의 난으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KCC 회장 측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대량으로 사들인 일이다.

가부장적 논리로 현대가에서는 여성 총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적통성을 내세우며 현정은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경영권 분쟁이 여덟 달째 계속되던 때, 이 같은 상황에서 현정은은 정면으로 맞섰다. 현대그룹을 국민기업화할 것을 천명한 것이다.


현정은 회장은 일반 공모 방식으로 천만 주 유상 증자를 실시하고 국민주를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국민들에게도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현대가 대주주의 전횡을 막는 국민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은 현정은 쪽으로 기울었다. 이는 경영권 방어의 기틀이 되어 현 회장의 입지를 굳히게 하였다.

3년 뒤 경영권 쟁탈전이 또다시 일어났다. 정몽헌 회장의 동생인 정몽준 회장의 공격이었다. 정몽준 회장 측은 외국인이 보유한 현대상선의 주식을 26.6% 매입하였다. 이로 인해 현정은 회장은 다시 한번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게 되었지만 현대상선 우호지분을 확보하여 결과적으론 경영권을 지켜냈다.

현대의 평생의 숙원
‘대북사업’


현정은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평생 숙원이었던 대북사업을 이어갔다. 대북 사업은 온통 가시밭길이었고 현 회장은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과 시아버지의 오랜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힘이 들 때마다 의지를 되새기며 한 고개씩 산을 넘었다.

현 회장은 취임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하였다. 이는 현정은이 현대가의 적통성을 이어간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몽헌에게 금강산을 줬는데 당신에게는 백두산까지 줄 테니 잘 해 보시오”라며 대북사업의 공식 창구로 현정은 회장을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대북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큰 인기를 끌며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그러나 10년 뒤 2008년 총격 피살로 인해 중단되었고 아직까지도 금강산 관광 길은 막혀있다. 이에 대한 현대 아산의 피해는 약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밝혔다.

그러나 현 회장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민간 주문단으로 방북하며 대북 사업의 끊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초 현정은 회장은 상공의 날 금탑 산업훈장 수상하였다. 남북 경제 협력 확대를 노력한 점이 높게 평가된 것이었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극복한 여성으로 선정

현 회장은 2009년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에 한국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79위에 올랐다. 또한 2011에는 영국의 유명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에 48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즈의 여성 기업인 선정 기준의 키워드는 리스크(risk)와 불확실성이었다. 어려운 격변의 시기에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슬기롭게 극복해 다른 여성 기업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들을 선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현 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현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 한 번 결정을 내리면 후회하지 않는 스타일로 뚝심 있는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일찌감치 맏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지이 전무는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600만 원어치를 인수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