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 삼성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광으로 잘 알려져있다. 부가티를 비로한 각종 명차는 기본으로 해마다 나오는 고급 신차를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모 공원에는 이건희 회장의 차고가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전문 기술자들이 이건희 회장의 차를 관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삼성자동차는 이렇듯 이건희 회장의 취미가 산업으로 승화된 경우로 평가된다.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산업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고 삼성이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하던 사업분야였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실패로 끝이 났다. 삼성자동차가 망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수차례 시행착오 반복하며
자동차 사업에 진입한 삼성

자동차 사업은 1980년대 중반 이병철 회장때부터 삼성이 심혈을 기울이던 분야였다. 처음부터 모든걸 시작해야 했기에 이병철 회장은 포드, 크라이슬러, 도요타 등의 기술 제휴를 받기 위해 협상을 모색했다. 그렇지만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고령인 이병철 회장에게 자동차 회사들은 쉽게 기술 제휴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한계에 부딪친 이병철 회장은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다.

1987년 형들을 제치고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은 이건희 회장은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 진출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0년 초에 한국에는 현대·기아·대우·쌍용 총 4개의의 자동차 업체가 있었다. 내수보다는 수출에 주력을 두는 경향을 보였다.

내수 시장 규모는 연간 판매량이 100만 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4사의 생존경쟁은 치열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자동차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기존 그룹들의 반발은 거셌다. 그 당시 삼성물산이 국내 매출 1위를 기록하던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늦은감이 없지 않았다.

일단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이 사업에 대한 미래 전망도 높게 보았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에 진입하기 위해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문제는 정부의 허가였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업종전문화정책을 내세우며 재벌그룹에게 3~4개의 업종으로 그룹 재편을 요구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정부의 허가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에 삼성은 전방위적인 로비에 나섰다. 몇몇 교수들에게 부탁해 삼성차 진입 허용 촉구 글을 신문에 기고하고 부산의 여론을 조성하여 시민운동까지 번지게 하는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총 동원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성의 승용차 사업 진출을 허가하게 된다. 1994년 삼성은 일본의 닛산자동차와 제휴를 맺어 사업진출을 위한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95년 삼성자동차 출범
첫 모델 SM5 출시

1995년 3월 자본금 1000억 원 규모로 삼성자동차가 출범하였다. 1996년 부산 신호 공단에 삼성 자동차 공단이 완공되었다. 삼성자동차는 2010년까지 연간 10만 대 규모의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사업을 시작해나갔다.

삼성자동차 부산 공장의 설비비는 5천억에서 6천억원으로 비싼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부대 시설비에 있었다. 가장 심각한건 비싼 공장 땅값이었는데, 현대자동차는 공장 부지비로 평당 8~18만 원을 들인데 비해 삼성은 평당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뻘밭을 공단으로 조성해야 했기 때문에 지반 침하를 막을 대책이 필요했다. 1m 간격으로 파일을 박고 평균 4m의 높이로 성토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공장 건설비도 필요 이상으로 들었다. 보기 좋게 하기 위해 공장 건물 높이를 1~2m씩 올리고 사원 아파트와 볼링장, 수영장도 지었다. 그 결과 부대 시설비가 공장 시설비의 2배가 됐다.

1998년 2월 삼성자동차의 첫 모델인 SM5가 출시되었다. 이 모델은 닛산의 ‘세피로’를 기본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뒤이어 삼성상용차는 1998년 11월 닛산 ‘아틀라스’를 베이스로 한 1톤 트럭 ‘야무진’을 시판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이어져
르노와 인수협상 진행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던 시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내수 경기가 위축되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자동차가 첫 모델인 SM5를 출시하자마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1998년 정부는 5대그룹도 부채비율이 높아 구조조정을해야 한다며 잘하는 산업을 그룹별로 모아준다는 빅딜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동차 사업에 갓 진입한 삼성은 뒤로 물러 나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리고 빅딜론이 제기되기 직전 삼성이 기아차 인수에 실패한 것도 이러한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자는 빅딜을 진행하였지만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차를 공식 판매한지 1년도 채 안되었던 시점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법정 관리에 따른 채권단의 손실을 삼성생명 주식(지분 26%) 중 350만 주(20%)를 추후 상장해 갚겠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의 주가는 주당 70만 원으로 계산되었다. 권단으로부터 진 부채 2억4500억 원을 갚고 손실 발생시 이건희 회장과 삼성 계열사들이 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관계업자들은 말했다.

삼성은 결국 2000년 초 르노와 인수 협상을 진행했다. 2000년 9월 4,400억 원의 자본금으로 르노삼성은 출범했다. 삼성그룹은 르노에 삼성의 브랜드를 빌려주는 대신 영업이익 발생시 매출의 0.8% 로열티를 받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가 글로벌 회사지만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한국에서 높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고장나지 않는차로 불리던
대표 모델 SM5 생산중단 결정

1998년 3월 출시 이후 대한민국 중형세단의 대표 모델이 되었던 르노삼성 SM5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최근 르노삼성은 SM5의 생산 중단을 확정하고 마지막 모델인 ‘SM5 아듀’를 2000대 한정으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자동차의 SM5는 내수 시장에서 지난 21년간 97만 여대, 수출 5만 여대 등 총 102만여대가 판매된 국내 중형세단의 상징적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SM5는 특히 이건희 회장이 로고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직접 업무용 차량으로 이용하는 등 많은 애착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이건희 회장이 공을 들인 SM5 1세대는 고장나지 않는 차로 불릴 정도로 내구성을 인정받았다. 마지막 모델이 된 ‘SM5 아듀’는 기존 SM5와 동일한 사양으로 구성된다고 전해진다.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 적용 가격보다 155만원 저렴한 200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SM5는 국내 자동차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중형세단의 전설’로 영원히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SM5의 뒤를 이어 SM6를 주력 중형세단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