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무슨 경영을 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범 삼성가 중에서도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이 둘 있으니 바로 신세계의 이명희 회장과 호텔신라의 이부진 사장이다. 범 삼성 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가족 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이 여기 속한다. 외가를 포함하면 메리츠 금융 지주, 중앙 그룹, 아워홈까지 포함된다.

이들 기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여성 경영인은 신세계 그룹을 일군 이명희 회장과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다. 이명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이부진은 이병철의 삼남 이건희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명희, 이부진 두 CEO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병철과 이건희 모두 재계 인사와의 자리에 두 사람을 대동하여 인맥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등 각별히 챙겼다. 이는 후에 기업을 맡은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이 각각 ‘리틀 이병철’, ‘리틀 이건희’이라 불릴 만큼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 모두 경영에 뛰어든 이후 그동안 쌓아둔 인맥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사진 등 대외적인 이미지가 거의 없는 이명희 회장과 패션부터 경영, 말, 사건사고 하나하나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부진은 경영방식에 있어서도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명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라는 조언을 중시한 경영관을 가지고 있다. 일을 맡기기 전에는 의심을 하고 시험하되, 한번 신뢰를 줬다면 아예 맡겨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신세계는 회장 서명 없이 모든 결정을 직접 선택한 전문경영인이 내릴 수 있었다. 재계는 이 같은 이명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이명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 덕분에 신세계는 유통업 전문경영인들의 꿈의 직장이라 불린다.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고, 트렌드 급변에 따라 수명이 3년 정도에 불과한 타 유통업 임원보다 평균 재직기간이 길다. 실제로 2013년 취임한 신세계백화점 장재영 대표는 올해로 7년, 이마트 이갑수 대표는 6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물려받은 이부진 사장은 전면에 나서 호텔신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비등기 이사로 활동하는 국내 오너 일가와는 달리 등기이사를 맡아 책임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대표이사로 선임된 2011년부터 직접 주주총회 의사봉을 드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위해 종일 현장에서 직원들의 동선을 스케치하는가 하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루이비통 모엣헤네시(LVMH) 그룹의 네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설득해 공항 면세점에 루이비통을 입점시키는 등 전형적인 ‘발로 뛰는 경영’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부진은 2002년 호텔신라 전무로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감사 결과에서 고객 서비스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을 확인한 이후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취했다. 전무이지만 사실상 호텔 신라 경영자였던 만큼 당시 신라호텔 사장이었던 이영일 사장 포함 9명의 등기이사가 책임을 물고 사임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애니콜 화형식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명희 회장은 올해 76세인 만큼 인사권을 제외한 경영권을 대부분 자녀에게 맡긴 상태다. 이중 이명희 회장의 장녀 정유경 총괄 사장은 신세계 면세점 사업에 적극 나서며 면세점 브랜드 1위 신라면세점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도 면세점을 주력 사업으로 보는 만큼, 앞으로 두 사람의 대결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