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서 200억 원 자산가로”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 십중팔구는 그저 운 좋게 부동산 상승기를 탄 사람들이 많다. 2010년 초반, 서울 부동산에 배팅하기만 했어도 수억 원 차익을 남긴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매물을 추천해줬던 이들이 진짜 전문가는 아니었을까? 26년 부동산 중개 경력을 가진 팟캐스트 ‘월전쉽’의 제갈량을 만나보았다.

1. 팟캐스트 월전쉽

▶월전쉽부터 제갈량까지 이름이 특이하다. 본명인지 궁금하다.

“월전쉽은 월세, 전세, 쉽세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월전세를 쉽게 알려주겠다는 뜻이다. 팟캐스트를 시작할 때 쉽세PD가 즉석에서 만들었다. 제갈량은 본명이 아닌 닉네임이다. 월전쉽을 결정할 때 함께 만들었다. 삼국지를 좋아하다 보니 부동산 계의 제갈공명이 되겠다는 생각에 지은 닉네임이다.”

▶팟캐스트 방송으로 이름을 알렸다.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팟캐스트 방송은 정말 갑자기 시작됐다. 쉽세PD를 2015년 신정 전날 만났는데, 2016년 1월에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쉽세PD는 그때 사무실을 구하러 내 중개사무소를 찾아온 고객이었다. 함께 들어온 달마시안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고도 부족해 신정에 출근해 더 이야기를 나눴었다. 돈이 없어 보여 사무실 책상을 내준 게 인연이 됐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부동산 지식을 알려주고 사무실도 주변에 내주는 걸 보더니 잘하는 게 뭐냐고 묻더라. ‘부동산’이라고 대답한지 얼마 되지 않아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자고 하더라. 그렇게 쉽세PD에 끌려 얼떨결에 시작했다. 방송 시작 직전에야 스튜디오에서 이름과 닉네임을 정했다.”

그는 애청자들이 찾아와 ‘쉽세PD’를 부르기 어려워할 때까지 뭐가 이상한지 눈치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중에야 ‘쉽세’ 발음이 문제 된 것을 알았다. 인터뷰 동안 몇 번 이야기를 꺼냈지만 딱히 바꿀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월전세를 누구나 쉽게 알게 해주는 방송 ‘월전쉽’이 탄생했다.

2. 월전쉽 제갈량이 되기까지의 여정

▶200억 원 대 자산가로 알고 있다. 원래부터 집이 부유했나.

“정반대다. 가난한 집의 5남매 중 막내였다. 고기나 기름을 못 먹어서 미역국도 첫 애 낳고 처음 먹어봤다. 그런데 가난하단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철학 책을 찾아봐서 그런가 ‘부모가 가난하지 내가 가난하냐?’라는 생각이었다. 자신감이 넘쳐서 우리 집 못 산다고 말해도 친구들이 믿어주질 않더라.”

▶반지하에서 시작했다고 들었다.

“90년에 결혼해 92년까지 6번이나 반지하를 옮겨 다녔다. 처음 마련한 보증금 500만 원짜리 신혼집은 천장이 워낙 낮아 혼수로 해간 장롱이 들어가지 않았다. 갈색 장롱이었는데 눕혀두니 관짝이 따로 없더라. 무서워서 하룻밤도 못 자고 못하고 다음 날 방을 내놨다. 당시에도 서울에 보증금 500에 월세 10만 원 방은 없었다. 경기도 광명 철산동까지 넘어가 반지하를 얻었다. 계단을 10칸이나 내려가야 했지만 부엌이랑 화장실이 집안에 있고 벌레도 적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부동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결혼 전에는 전북은행에서 일을 했다. 82년에 취업해 앉을 틈도 없이 일했다. 일 욕심이 많아 고객을 받고 받고 또 받았다. 그때는 내가 일 안 하면 은행이 문 닫는 줄 알았다. 2년 일하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일을 그만뒀다. 86년에 다시 투자은행에 취업했다가 2년 만에 그만두고 정수기 업체 영업직으로 근무했다.”

“사실 은행 거래처 때 염두에 둔 곳인 줄 알고 취업했는데 이름이 비슷해 잘못 들어간 거였다. 영업직은 적성에 안 맞아 금방 관뒀다. 결혼한 뒤에는 육아를 하며 부업을 했다. 12시까지 손 부르트도록 일해도 주 2만 6000원밖에 못 벌더라. 그러다 아는 사람이 반포 부동산에서 여사장님과 일할 사람을 구한다 하여 부동산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때부터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한 건가.

“중개사는 아니고 직원이었다. 월 50만 원을 받고 철산에서 반포로 출근해 9시부터 8시까지 일했다. 동네에서 일해도 50만 원, 반포에서 일해도 50만 원인데 ‘돈이 모이는 강남으로 가자’라는 생각에 강남으로 출퇴근했다. 2달 정도 일하니 나도 할 수 있겠더라.”

“생각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부동산 다 사기꾼인 줄 알았다. 가족을 위해 5년만 딱 일하면서 내게 투자할 사람을 찾을 생각이었다. 생각이 바뀌니 2년 동안 일을 배우고 동업자와 중개사무소를 개업까지 했다. 93년부터 부동산 업계에 발을 들였으니 벌써 26년 동안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그새 취득했던 건가.

“자격증은 동업자가 있었다. 나는 자격증을 40대에 취득했다. 반포에서 부동산 업무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후였다. 대신 차별화를 위해 아침 일찍 건축주들을 찾아갔다. 당시 건축주들은 아침 7시에 현장을 방문해 지시를 내리고 가곤 했다. 그 시간에는 다른 중개사들이 활동하지 않아 경쟁자가 없었다.”

“이른 아침에 건축주를 찾아가 같은 원룸이라도 월세를 10만 원 더 받을 수 있는 구조의 집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신뢰를 얻어 건축주가 건물을 통째로 맡겼다. 완공도 전에 세를 모두 놓자 소문이 나서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많아졌다. 한 달에 68건 거래하고 하루에 10개 매물을 거래한 적도 있었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어 몸이 많이 상했는데, 원체 건강해 약 하나 지어먹으니 금세 회복되더라. 그래서 일을 더 했다.”

3. 부동산과 월전쉽의 목표

▶첫 방송 제목이 ‘500만 원으로 강남에서 집을 살 수 있다? 없다?’였다. 지금도 가능한가.

“2016년 월전쉽 첫 방송을 시작할 때 소재가 없었다. 쉽세PD가 1억 원에 강남에서 집 마련이 가능하냐고 묻더라. 가능하다 했다. 5000만 원, 1000만 원…  500만 원으로 집을 사게 해줬다는 말을 했더니  쉽게 PD가 그걸로 제목을 지었다. 방송을 시작하던 2016년은 부동산 시장이 활활 타오르던 때였다. 담보대출도 80%까지 나왔다. 전세 등을 잘 계산하면 충분히 가능한 금액이었다.”

“지금은 당시 3~4억 원에 찾아준 재건축 빌라들 가격도 10억 원대로 올랐다. 너무 올라서 지금은 1, 2억 가지고는 예전 같은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최근에는 서울의 저평가된 부동산을 주로 찾아드리고 있다. 해외 부동산도 조사하고 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월전쉽은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건가.

“월전쉽은 재능기부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주 수입원은 쉽세PD와 나 모두 따로 있다. 직접 상담받으러 오는 애청자들과 부동산 상담은 3시간 이상 진행될 때가 많은다. 수익을 위해서라면 그냥 콕 집어주면 그만이다. 유튜브 수익이나 월전쉽 활동 수익은 대부분 애청자들에게 쓴다. 전에는 애청자들과 요트파티도 열었다. 다만 애청자라고 중개 수수료 안 받는 일은 없다. 상담비는 없지만 거래 시 법정 수수료는 받는다.”

▶부동산 상담을 무슨 3시간이나 하나. 그리고 어떻게 알고 또 찾아오는 건가.

“처음 방송 때는 장소나 얼굴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방송 첫 상담자가 난관이었다. 하도 사방에 일을 벌여놔서 대수술이 필요했다. 방송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서 위치를 알려주고 직접 만나 상담을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 애청자들에게 알려졌다.”

“때로는 상담이 3시간으로 부족할 때도 많다. 사실 부동산 이야기는 10%에 개인사 이야기가 90%다. 가정문제 해결이 먼저다. 가정이 편해야 돈도 편하게 찾아온다, 그래서 상담받으러 올 땐 시부모님부터 갈등 있는 모든 가족 데려오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 인생을 나누다 보니 이젠 팬이라기보단 가족과 같다. 우리는 끈끈한 패밀리쉽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모두가 소중하다.”

애청자들을 모두 부자로 만드는 게 목표라는 제갈량과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그는 여담으로 두 아들도 자신의 재산 규모를 모른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재학 당시 용돈도 일주일에 500원 밖에 주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두 아들 모두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고 장가간 첫째 아들은 결혼도 보탬 없이 스스로 하게 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무제표 교육 등 재테크 교육을 시킨 결과란다.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사후에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임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