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자존심”

‘망치 회장’, ‘건설의 신화적 인물’, ‘사회사업가’등 온갖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우방의 고 이순목 회장이다. 그는 1978년 우방주택을 설립해 태왕, 보성, 청구와 함께 경북과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 업체로 성장시켰다. 지금도 대구 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 ’83타워’가 과거 우방타워였음을 고려하면 당시 우방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1. 순이익 1위, 공급량 2위의 건설업체 ‘우방’

우방주택의 첫 사업은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지은 16가구의 단독주택이었다. 이후 1980년 ‘동부 우방아파트’ 30가구를 시작으로 아파트 사업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81년부터 82년까지 지방건설사로는 드물게 대단지 아파트를 시공했다. 이때 건립한 아파트만 313가구에 이르렀다.

이후 1980년대 말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된 신도시 건설 붐이 불었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우방은 건설 붐을 타고 수도권 및 전국으로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1986년 대구지역 주택 보급 실적 1위를 달성했으며 1989년에는 전국에서 2위의 실적을 거두었다. IMF 직전인 1997년에는 유수의 대기업 건설사를 누르고 상반기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순이익 1위라고 아파트를 저렴하게 짓는 일은 없었다. 창업주인 이순목 회장은 건설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부실한 부분을 망치로 깨부순 것으로 유명하다. ‘망치 회장’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 같은 행동 때문이다. 망치로 부순 뒤에는 “내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지어 달라”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 같은 일화가 현장에 전파되면서 전국적으로 ‘우방이 지은 집이 튼튼하고 살기 좋다’라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순이익 1위를 기록한 1997년에는 주택공사가 주재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변재신 우방 대표이사는 “우방아파트엔 예나 지금이나 ‘거품’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고객 중심으로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 혁신적인 건설 업체의 상징이었던 우방

우방은 1990년대 국내 최고의 아파트 건설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파트 기본 디자인인 3베이 평면설계와 지하에 주차장을, 지상에 녹지를 조성하는 구조는 모두 우방이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를 시도했던 구조와 설계다. 최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호텔식 아파트 현관과 로비도 우방의 작품이다.

제도에 있어서도 우방은 남달랐다. 우방은 국내 최초로 중도금 무이자 대출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다. 당시 은행 이자가 두 자릿수였음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처럼 혁신적인 설계와 분양 제도를 갖춘 우방은 상승세를 타고 재계 순위 30위까지 성장했다. 1995년 3월 28일에는 대구광역시의 랜드마크가 된 우방타워(현 83타워)와 인근 테마파크인 우방타워랜드(현 이월드)를 개장하기도 했다.

1995년부터 전성기를 맞은 우방은 우방랜드 등 10여 개의 산하 기업을 두었으며 브랜드 가치가 1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방은 2000년,  IMF 구제금융 시절 발생한 자금난과 부동산 시장 위축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우방그룹은 워크아웃을 거쳐 2000년 최종 부도 처리됐다. 우방 관련자는 “우방은 자산이 많고 인지도가 높았으나 본업인 건설업 외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이 화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3. 우방에게 다가온 소생의 기회

우방은 2000년 8월 28일 부도를 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구의 각계 인사들이 모여 2000년 12월 ‘우방 살리기 시민운동 본부’를 결성한 것이다. 이들이 6개월 동안 진행한 서명운동은 105만 명의 대구 시민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로 전달되었다. 우방에게 법정관리라는 기회가 주어진 데는 이 같은 시민운동의 영향이 컸다.

우방은 법정관리 기간 중 수출업에 치우친 점을 건설업으로 보완하려던 세븐 마운틴 그룹(C& 그룹)에 2005년 인수합병되었다. C&우방은 세븐 마운틴 그룹의 영향으로 해양건설 사업에 진출해 인천 북항 부두 건설공사와 인천 남항 제2준설 터 투기장 부지조성 공사를 맡았다. 경영진도 현대 삼성 출신의 투톱 CEO 체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창업주인 이순목 회장은 이미 경영인 자리와 한국주택협회장, 평통 부의장 등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이순목 회장은 교육계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2009년 임병석 회장 체제에서 우방 직원들은 7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우방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임병석 회장은 2008년 임직원 월급을 동경하면서 본인 연봉을 4억 9000만 원에서 8억 원으로 증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 회장 친인척으로 구성된 경영진끼리 파벌 싸움이 벌어져 회사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라고 비대위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C&우방은 다시 법정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9월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간 우방을 SM그룹에 인수하며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우방은 SM그룹에 인수된 이후 2017년 매출 2915억 원, 영업이익 553억 원, 순이익 514억 원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6년 대비 영업이익은 45.2%, 순이익은 96.18% 상승한 수치다. 지방 건설사의 신화 우방이 다시 90년대의 명성을 회복하길 기대해 본다.

글 임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