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한전 부지를 10조에 매입한지 무려 5년이 지났다. 현대자동차는 이 부지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라 명명된 사옥을 지을 예정이다. 무려 높이 569m, 지하 7층~지상 105층의 타워 1개 동과 기타 4개의 건물까지 총 5개의 건물이 들어설 현대 글로벌 비즈니스타워는 무산된 도곡 삼성타운을 떠올리게 한다.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한전 부지를 매입한 10조 원이면 현대자동차가 최대 10개의 자동차 조립공장 건립, 20여 종의 새 차 모델 개발, 푸조-시트로엥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 인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기회를 포기하고 진행한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는 부지 매입 이후 5년간 변변찮은 건물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한전 부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왜 진행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자.

4~5조 원대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한전 부지가 10조 원에 낙찰된 건, 한전 부지 매입을 경정했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의지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왜 2배 가까운 금액을 들여서까지 한전 부지를 매입하려 했던 걸까? 그 이유는 그의 숙원에 있다. 정몽구의 4대 숙원은 ‘글로벌 5위 진입, 현대가의 적통 계승, 고로 제철소 준공, 통합사옥 건립’이다.

현대자동차는 2010년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순위 5위를 달성했고, 현대그룹의 시작이었던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가(家) 적통 계승도 달성했다. 현대제철 등 수직계열화도 달성했으니 이제 남은 숙원은 ‘통합사옥 건립’뿐이다. 한전 부지 매입과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의 건설은 정몽구에게 마지막 남은 꿈인 것이다.

그 일환으로 정몽구는 2014년 한전 부지 7만 9342㎡을 10조 5500억 원에 매입했는데, 3.3㎡당 4억 4000만 원이다. 정몽구 회장은 “공기업인 한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라”라며 매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굳이 한전 부지를 매입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는 뚝섬 인근에 지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제동을 걸었다.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한 것이다. 자연히 뚝섬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때 실망한 정몽구 회장이 담당 임원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서울시의 규제 결과 서울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를 지을 수 있는 부지는 한전 부지만 남게 되었다.

현대자동차가 예상보다 고가를 제시하긴 했지만, 아무런 계산도 없이 10조 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진 않았다.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에 입주할 시 서울 소재의 계열사가 연간 2400억 원씩 지출하고 있는 임대료를 절감할 수 있다. 행사를 유치해 연간 1조 2천억 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이며 한전 부지 인근의 부동산은 10년 동안 평균 9%씩 상승해온 점도 GBC 사업가치에 포함되었다.

현대자동차의 계산법에 따르면 통합 사옥이 창출할 경제적 효과는 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의 결정에 대해 “좋은 물건을 제값에 주고 사는 것도 경영능력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5년 동안 정몽구의 꿈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2015년 6월에 제출한 사전협상 개발 계획안은 서울시에 의해 수정요청을 받았고, 그해 9월 다시 수정 계획안을 제출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GBC 착공 전 변전소를 이전하여 공사기간을 단축하고자 했으나 강남구가 건축 허가 신청을 세부개발계획 미확정을 이유로반려하면서 무산되었다.

거듭되는 반려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단계를 밟아나갔다. 공사비용만 2조 5000억 원이 넘어 착공 지연에 따른 손실이 5000억 원을 넘지만, 10조가 넘는 가격으로 매입하는 바람에 이제 와서 부지를 팔려 해도 매입자를 찾기 어려웠다. GBC는 2016년 9월에야 도시건축공동위 심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GBC 사업은 2017년부터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3차례에 걸쳐 보류되었다. 수도권정비위원회는 건축물이나 공장 신축 등으로 인한 수도권의 인구 과밀 집을 조율하기 위한 협의기구로, 한전 부지처럼 공공기관이 이전한 1만㎡ 규모 이상 대지에 새로운 인구유발시설을 지을 때 거쳐야 하는 심의 절차다.

2017년 12월 1차 보류는 개발지 인근 봉은사의 일조권과 조망권 보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보류되었다. 서울시의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도 결론이 나지 않아 통과되었어도 바로 착공에 들어갈 순 없었지만, 서울시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하고 2개월 뒤인 2018년 3월에도 GBC 사업은 2차 보류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후 4월에 환경영향평가가 조건부 승인되었지만 7월에 수도권정비위원회는 GBC사업에 대해 또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수도권정비위원회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신사옥에 한데 모이는 만큼 인구 유발,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며 적절한 인구 분산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2018년 10월 GBC 조기 착공을 위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현대차 신사옥 심의는 ‘수도권정비위’라는 민간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라 정부가 언급하긴 곤란하다. 9·13 부동산 대책 발표 후 한 달밖에 안 됐으니 시장 상황을 더 보고 판단하자”라며 GBC 규제완화를 반대한 점을 들어 GBC 사업의 보류가 사업때문이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드디어 2019년 1월 7일. 서울시가 신청한 GBC 사업이 수도권정비위원회를 통과했다. 현대자동차가 12월에 제시한 인구 유입으로 인한 부작용 방지 대책이 서울시가 모니터링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GBC 사업 앞에는 서울시의 건축 허가와 굴토심의가 남았다. 건축 허가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기에 빨라도 약 3개월이 소모되고, 굴토심의도 1개월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GBC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올해 상반기 정도다. 현대자동차는 7월 착공을 계획하고 있다.

드디어 GBC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 중국을 위시한 글로벌 시장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대자동차의 GBC 사업에 대한 비난도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부동산 매입에 10조 원씩 쓰는 대기업에 더 이상 세제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라며 현대자동차 그룹이 매년 받는 약 1조 원의 세제혜택을 비난하고 나섰다. 또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땅 파고 초고층 빌딩 짓는데” 2~3년 동안 4조 원을 들일 여유가 있느냐는 현실적인 우려도 제기된다.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2018년 47%, 순이익은 64%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