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삼성의 상징과 같은 서초 삼성 사옥 매각의 여파가 거세다. 소위 빌딩 쇼핑을 즐기던 기업뿐만 아니라 기업을 팔더라도 부동산은 끝끝내 지켰던 롯데마저도 부동산 매각에 나섰다. 이처럼 부동산을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 급변은 2~3년 만에 일어났다. 2019년 들어서는 알짜 부동산, 소위 황금 매물까지 속속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너 나 없이 부동산을 내놓는 가운데, 왜 대기업들마저 부동산을 내놓는 걸까?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자.

1. 폐는 안 끼칠 테니 보증 좀, 파산한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은 2018년 기준 재계 서열 56위의 한진중공업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2019년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조선소 투자 보증을 섰으나 투자 실패로 파산에 이르렀다. 채권단이 조남호 회장의 전 지분을 소각함에 따라 최대 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변경되었다.

한진중공업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따라 올해 8월 인천 물류의 중심지로 개발되던 1314억 원의 인천 율도 부지(9만 9173㎡, 약 3만 평)를 처분해야 했다. 최근에는 보유한 알짜 부동산인 강변역 동서울 터미널(3만 6704㎡, 약 1만 1천 평)을 4025억 원에 매각했다.

2. 개미의 돈으로 유동성 확보, 롯데

연 6% 배당률을 내세운 롯데 리츠가 63.3 대 1이라는 리츠 사상 최대 경쟁률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공모 금액만 4조 7600억 원이 몰렸다. 리츠는 다수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하여 배당 수익을 노리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롯데 계열사는 롯데 리츠에 자사 부동산 롯데백화점 4곳, 롯데마트 4곳, 롯데 아웃렛 2곳을 1조 629억 원에 매각했다. 다만 사실상 매입에 사용된 돈은 롯데 리츠 주식을 매입한 증권 개미들의 돈이다. 이처럼 유동성을 위해 자사 건물을 매물로 내놓는 경우는 신세계 그룹에서도 나타났다.

3. 건물주 포기하고 다시 월세살이, 신세계

삼성이 서울 소재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동안 신세계는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6월 정용진 부회장은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라며 전략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세계 그룹의 계열사 이마트는 13개 점포를 9524억 원에 매각한 뒤 임차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을 도입했다. 이마트는 스타필드, 온라인 법인, 해외시장 확장 등의 투자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캐시카우인 대형마트 침체를 맞이했다. 이마트의 부채 비율도 작년 89.1%에서 올해 102.4%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에 매인 자금을 활용하기 위해 매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4. 건물만? 기업도 파는 사장님들

대기업들의 부동산이 여러 이유로 시장에 나오는 가운데, M&A 시장에도 아시아나 항공, 웅진코웨이, 대우건설과 같은 기업 자체도 매물로 올라오고 있다. 해당 매물들은 자금 유동성 확보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매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건물과 계열사를 시장에 내놓는 이유는 대부분 자산 유동성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반면 중소기업 사장들은 기업 상속을 포기하고 기업을 통째로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 최대 M&A 기관인 KMX에 따르면 2018년에만 300~400개 기업이 가업승계를 포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을 내놓는 사장들은 주로 30~40년 전 창업한 이들로, 평균 연령대는 66.2세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 수위권의 증여 상속세 세율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최고 세율은 50% 지만, 경영권이 있는 최대 주주지분의 경우 세율이 최대 65%까지 적용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해외 자본 등에 알짜 기업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대기업의 자금 유동성 악화는 기업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2018년 1~3분기 비금융사 579곳의 영업이익은 134조 1898억 원에서 2019년 같은 기간 82조 1610억 원으로 급락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해 기업의 현금 동원력이 약해진 만큼, 불필요한 부동산을 처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기업의 유동성 확보 움직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 임찬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