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 지으며 잘나가던 그룹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

[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 잠실 롯데 빌딩이 세워지기 전 한국의 마천루로 불리며 명실상부 서울의 랜드마크격 건물은 63빌딩이었다. 이 건물을 세우고 소유했던 기업은 바로 신동아그룹. 한때 재계 랭킹 25위에 차지하며 대한민국을 이끌던 이 그룹은 현재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태다. 잘나가던 신동아그룹의 시작과 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실향민 출신 최성모 창업주
대한생명 인수하며 영역 확장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곡물상 운영을 사업하던 최성모 창업주는 해방 후 월남해 사업을 시작한다. 호텔 운영 등 여러 사업을 이끌어 나가다 6·25 전쟁 때 소금 절인 생선을 미군에게 납부하면서 큰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 돈을 밑천으로 최성모 회장은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같은 실향민 출신인 대농그룹 창업 회장과 함께 냉동 회사, 제분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한다. 1964년 조선 제분을 인수해 ‘동아제분 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한 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해 나간다. 밀가루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으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된 최성모 회장은 1969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금융회사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최성모 회장은 또한 삼풍 산업을 세워 상가 임대 사업에 진출하며 대한 플라스틱을 인수한 후 1971년에는 한국 콘티넨탈 식품을 세운다. 이후 1973년에는 태흥산업과 대성 목제를 각각 인수하면서 최성모 회장의 기업은 승승장구한다.

준공되자마자 많은 화제
교보생명과 2위 자리 경쟁

1976년 작고한 최창모 창업회장에게서 장남 최순영 회장은 가업을 이어 받는다. 이때부터 신동아그룹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최순영 회장은 1985년 국내 최고의 마천루로 불리던 63빌딩을 세운다. 공사 5년만 85년에 완공된 63빌딩은 준공되자마자 많은 화제를 모았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 번씩 둘러본다는 관광명소가 될 정도였다.

1999년 당시 대한생명이 보유한 자산만 132억 6천억에 이르며 생명보험업계에서 교보생명과 2위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인다. 특히 최순영 회장은 63빌딩이 기도하는 손을 상징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유명하다. 최 회장은 대한 기독교 선교회를 세워 온누리 교회를 탄생시켰다.

공적자금 투입되며 사실상 해체
대한생명 한화 그룹이 인수해

승승장구하며 소위 ‘잘나가던’ 신동아 그룹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외화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최 회장이 구속되는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다. 1996년 미국에 유령회사를 차린 후 허위 문서를 작성해 국내 여러 은행에서 1억 8500만 달러를 대출받고 이 중 2천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빼돌렸다는 혐의였다. 이로 인해 최 회장은 1999년 2월 구속된다.

옷 로비 사건 또한 문제가 됐다. 당시 검찰 총장과 부인이 최순영 부인 이형자 씨에게 고급옷을 받았다고 보도되면서부터였다. 사건은 걷잡을 수없이 퍼지며 국회 청문회, 특별 검사까지 임명되었다. 검찰은 실패한 옷 로비라며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동아그룹은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최순영 회장이 구속된 다음날 금융감독위원회는 대한생명 자산 부채에 대한 특별감사 실시에 나섰다. 금감위는 대한 생명의 부채가 자산보다 2조 9천억 원이나 많아 정상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공적자금 투입되면서 신동아그룹은 본격적인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2002년 12월 대한생명은 한화그룹이 인수해 현재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63빌딩과 신동아화재 역시 한화그룹의 소유가 됐다. 신동아그룹의 모태인 동아제분은 사조산업이 인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벌인 일이라 주장
재단 소유 고급빌라 거주

최순영 회장은 신동아그룹 해체에 대해 김대중 정권이 작정하고 벌인 일이라며 자서전과 언론매체들을 통해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구속 당시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 원이 확정된 최 회장의 근황은 뉴스에서 볼 수 있다.

14년 넘는 기간 동안 추징금과 1000억 원 넘는 세금 내지 않고 있는 최 회장. 1989년 설립한 횃불재단을 부인과 함께 이사장을 역임하며 32년간 사실상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3년 언론을 통해 밝혀진 이사장 월 급여는 1500만 원으로 재단은 사유화해 재단 소유 고급빌라에 살며 부유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