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주식 사 모았다’ 최진실이 공짜로 광고 찍던 국내 기업의 몰락

[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작은 기아자동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려던 삼성도 탐내던 기아그룹은 한국 최초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한 기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아그룹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자.

국산 자전거 3000리호
K-360(기아 삼륜차) 생산

기아그룹은 1944년 설립된 경성정공에서 자전거 제조로 시작했다. 김철호 창업주는 1922년 일본 오사카에서 자전거 부품회사인 삼화제작소 설립한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창업주는 1950년 기아산업으로 사명 바꾸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1952년 최초 국산 자전거 ‘3000리호’, 1961년 오토바이 ‘C-100’을 만들어 사업은 확장한다. 1962년 최초의 화물차 K-360을 즉 기아 삼륜차를 생산하며 자동차 산업 진출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K-360은 연탄, 김장김치 나르는데 쓰여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자동차 수출 30억 달러 기록
소유와 경영 분리된 구조

1970년부터 ‘기아써비스’를 시작으로 김철호 창업주는 사업 확장에 나선다. 1973년에는 썬공업과 동우정기를 인수하고 1976년에는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삼원제작소를 설립한다. 이후 남영금형공업과 대한중기공업을 인수하며 1992년에는 건설업과 금융업까지 진출한다.

1996년 기아는 자동차 수출 30억 달러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재계 순위 8위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한다. 현재 기아그룹이 종종 모범기업으로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일가 소유가 아닌 전문 경영 체제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 때문이다. 1993년, 자동차 산업 진출에 나선 삼성그룹이 기아의 주식을 대량 매입하며 충돌을 빚는 일까지 벌어진다.

1997년 10월 부도 맞이해
22개 계열사 청산 및 합병

승승장구하던 기아그룹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과열되며 연일 적자를 기록했다. 아시아 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산건설은 각각 294억 원, 895억 원, 67억 원의 적자를 냈다. 국제 경쟁과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등으로 악재를 맞으며 위기설에 휩싸이던 기아그룹은 금융위기가 닥치며 1997년 7월 부도를 맞았다. 이후 1984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는 1998년 10월 국제입찰을 통해 현대그룹에 낙찰된다.

전문가들은 기아그룹 부도의 원인을 2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이었다. 1990년대 트럭과 철강 산업에 전폭적인 투자에 나섰지만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공급 과잉이 발생했다. 주택건설 역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채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두 번째는 삼성의 인수 추진과 적자에 시달리던 기아그룹 계열사가 꼽힌다. 특히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삼성은 기아그룹이 금융권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삼성 음모론’이라고만 알려지던 사건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부도를 맞이한 당시 당대 최고의 스타 차범근과 최진실이 노 개런티로 기아자동차의 광고에 나선 일도 화제가 됐다. 이후 기아자동차는 회생 후 감사의 의미로 차범근에게 엔터프라이즈, 최진실에는 카니발을 기증했다. 현재 기아차, 아주금속공업, 카스코, 본텍 등은 현대그룹으로 합병됐고, 기아특수강은 세아그룹으로 편입됐다. 나머지 22개 계열사들은 청산·합병·법정관리 등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