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파 백화점’ 기억하시나요? 드라마 같은 한 그룹의 몰락

[MONEYGROUND 디지털뉴스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그린 영화 <1987>에서는 추억 속의 백화점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민주 운동의 중심지였던 ‘미도파 백화점’이다. 그랬던 ‘미도파 백화점’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오늘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미도파 백화점과 미도파를 운영했던 대농그룹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자.

국내 1세대 백화점
중구 백화점 경쟁의 시발점

미도파 백화점은 서울의 중구, 노원구의 랜드마크로 70~80년대에 친구들,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추억의 백화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소유의 조지아 백화점으로 중구 소공동에 세워져 미쓰코시, 화신 백화점과 함께 국내 1세대 백화점으로 불리었으며 중구 명동 백화점 경쟁의 시발점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기업에게 인수되어 ‘미도파 백화점’으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1969년 대농그룹의 박용학 회장이 미도파를 인수하면서 1970년대 대농그룹과 함께 최전성기를 맞았다.

사설 우체국 경영했던 박용학 회장
우연한 계기로 월남하여 사업 시작

박용학 회장은 1915년 생으로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사설 우체국을 경영하는 우체국장이었다. 1945년 해방 후, 박 회장이 서울 우체국에 돈을 받기 위해 잠시 서울에 들른 사이 소련군이 38선에 주둔해있던 탓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게 된다. 그는 결국 서울 우체국에서 받은 9만 원과 이후 월남한 가족들이 가지고 온 20만 원을 자본금으로 광목 도매상을 차리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6.25 전쟁이 발발해 영영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55년 대한농산의 설립 이후였다. 당시 최성모 동아제분 사장, 이상순 천일곡산 사장 등 5명과 함께 농산물 업체인 대한농산을 설립하고 수입이 아닌 수출을 위주로 하는 사업구조로 재편했다. 1960년대부터는 특히 방직물 수출을 주력으로 삼아 몇 년 만에 국내 면방직 업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69년에는 미도파 백화점을 인수하면서 섬유업에서 유통업까지 사업을 확대해 최전성기를 맞는다.

한국 재계에 한 획을 그은 1세대 기업인
정주영 회장과는 친한 술친구 사이

박용학 회장은 사업 확장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다. 미도파 백화점의 인수를 시작으로 골프장 부지를 매입해 레저 사업을 시도하는가 하면, 타 기업과 합작해 해운업에 도전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박 회장은 끝내 27년간 키워온 다양한 사업체들을 기반으로 1973년 ‘대농’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대농그룹을 세우고 회장직에 취임한다. 그룹 기업이 되고 나서부터는 섬유업계와 재계를 아우르며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농그룹은 1970년대 중반, 오일 쇼크가 발생했을 때 타격을 많이 받은 기업 중 하나였다. 원유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섬유산업에 원가 압력이 높아지면서 대농 그룹은 법정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박 회장은 당시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부지를 팔아 10년 만에 겨우 기업을 정상궤도에 돌려놓았다. 이 때문에 대농 그룹은 70년대 후반부터 방직에 대한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진행했다.

박 회장은 1989년을 끝으로 장남 박영일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명예 회장으로 물러났다. 박용학 회장은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과는 동향 출신에 동갑으로 함께 술을 마시는 막역지우였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함께 손꼽히는 국내 1세대 기업인이었던 그는 ‘재계의 마당발’, ‘한국 수출 산업의 견인차’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1991년에는 민간이 최초로 무역협회 21대 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무리한 문어발식 경영
주력 사업을 향한 적대적 M&A 공격

배우 안인숙과 결혼한 것으로 유명했던 대농그룹의 장남 박영일은 부회장직을 맡을 때부터 면방 산업의 사양화를 우려해 면방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미도파 백화점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미도파 백화점의 점포를 확장하면서 다점포 영업 전략을 선택했다. 명동뿐만 아니라 청량리, 상계동, 춘천까지 점포를 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사업 다각화에 힘쓰면서 코리아헤럴드, 헤럴드경제신문의 전신인 내외경제신문까지 인수하면서 언론 사업에도 진출했고 대농창업투자, 노원케이블 TV 등 10 여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대농 그룹은 유통, 정보 산업을 주축으로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렸고 1990년대에는 재계 순위 30위권에 드는 대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대농 그룹의 위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주력 사업이었던 면방직 시장이 침체되고 구조조정이 늦어지면서 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또한 적자가 누적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었다. 여기에 무리한 문어발식 경영과 인수합병으로 은행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이 사위로 있던 신동방그룹의 적대적인 M&A 공격에 휩쓸리게 되었다. 신동방그룹은 미도파 백화점을 노렸고 당시 대농그룹은 이미 미도파 백화점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한 터라 박영일 회장은 미도파를 뺏기면 대농 그룹 자체를 잃어버리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박영일 회장은 이미 재무 구조가 나빠진 상태에서 미도파 경영권 방어를 위해 무리하게 1288억의 거금을 쓰는 악수를 두었다. 결국 대농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마지막으로 1998년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대농 그룹의 부도 이후 (주)미도파로 운영되던 미도파 백화점은 끝내 롯데에게 인수되었다. 롯데는 당시 미도파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서 ‘롯데 미도파’로 사명을 변경한 뒤 운영했으나 이마저도 2013년 롯데 쇼핑이 롯데 미도파를 인수하면서 ‘미도파’라는 이름은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70~80년대의 추억을 안겨주었던 미도파 백화점은 현재 각각 명동의 롯데 영플라자, 노원의 롯데 백화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