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21명 극단적 선택’ 요즘 민중의 지팡이가 처한 현실 수준

경찰 올해만 21명 극단선택
트라우마 위험 등으로 자살률 높아
상담사 1명 한해 427명 상담
인력·예산 증원 절실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요. 교통사고 현장, 자살기도자를 구조하는 현장 등에서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경찰은 정작 스스로의 목숨은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특수직 공무원 가운데 유독 경찰관이 자살자 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대체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이 대체 어떤 현실에 노출돼있길래 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11월 7일 서울 종로경찰서 한 파출소에서는 50대 A 경위가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B 경사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요. 경찰은 B 경사가 남긴 유서와 주변 CCTV 등을 토대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국회 행정 안전 위원회 소속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넘겨받아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찰관 수는 해마다 20여 명에 달하는데요. 2019년에는 20명, 2020년에는 24명, 올해는 11월 11일 기준으로 21명의 경찰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다른 특수직 공무원들의 극단적 선택 비율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난 2018년경 발표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의하면 자살자 수를 인구 10만 명으로 환산했을 시 집배원은 5명, 소방관은 연 10명, 경찰관은 무려 20명에 달합니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경찰 내부에서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경찰관 개인이 극단적 선택을 내리기까지 건강, 경제, 직무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테지만 무엇보다 경찰 내부의 ‘조직문화’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데요.

경찰대 치안정책 연구소 소속 한 연구관은 “50대 전후, 경위급의 자살 빈도가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라며 “경위 계급은 근속 승진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상하 관계에서 이중으로 역할 부담을 떠안게 되는 큰 계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경찰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찰들이 전문적인 심리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 동행 센터 등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마저도 예산이 부족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예산 편성 금액이 턱없이 모자라 상담사 인원 증원이 이뤄지지 못해 지난 2020년 기준 상담사 1명이 한 해 맡는 경찰관이 427명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 야당의 한 의원은 “적극적으로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고, 이들을 조기에 치유하기 위해선 상담사들이 경찰서로 직접 찾아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의 예산 수준에서는 한계가 있다.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출처_YTN

시민의 목숨을 구하고 재산을 지키는 경찰이라는 이미지와 다소 동떨어져있는 이번 조사 결과는 그간 공권력의 상징이던 경찰이 현재 처한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하는데요. 업계에 의하면, 경찰관이 현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은 물론 폭행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두들겨 맞는 경찰’, ‘매 맞는 경찰’등의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매년 경찰을 모욕·폭행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받는 건 수는 1만 건을 넘길 정도이지만, 이 중 대부분은 집행 유예나 벌금형에 그친다고 합니다.

사진출처_서울 용산경찰서

예컨대 지난해 2월 70대 남성 김 모 씨는 오후 10시쯤 다른 시민과 말다툼을 하던 중 경찰의 귀가 권유를 받았습니다. 이에 김 씨는 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양손으로 경찰의 멱살을 잡고 머리로 경찰관의 얼굴을 들이 받기도 했는데요.

해당 사건에 대해 판사는 경찰이 처벌 부을 원서를 제출했고, 김 씨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로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김 씨가 이전에 폭력 전과가 다수 있었지만 대부분 오래전 사건이라는 점이 감형이 요인이 됐다는데요.

경찰청 경찰 통계연보에 의하면 공무집행 방해사범으로 입건된 이들은 매년 1만 명을 훨씬 넘지만, 대부분 벌금형, 집행유예에 그칠 정도로 약한 처벌을 받습니다. 현행법상 공무집행방회 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데요. 2018년을 예로 들자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1심 재판을 받은 8791명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13.8%에 해당하는 1214명에 불과했습니다.

경찰 조직 내부에서는 경찰이 현재 처한 현실을 타개해나가기 위한 일부 방안으로 용의자를 제압할 시 지금보다 더 넓은 수준의 물리력을 허용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됩니다. 김해중부 경찰서 소속 23년 차 김 모 경위는 지난해 5월 조직 내부망인 ‘현장 활력소’에 ‘짭새가 아닌 국민의 경찰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는데요. A4용지 5장 분량의 이 글에는 경찰이 현재 왜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으며, 현재 경찰이 왜 경찰다울 수 없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해당 글에서 김 경위는 현재 용의자 제압 시 경찰의 물리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자칫하다 사고 나면 경찰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그는 “절도범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하다 사망해도 경찰에게 민사소송이 들어오는 것이 현실”이라며 “일반인 자동차보험 자기 부담금이 20만 원인데 순찰차량은 100만 원. 추격은 경찰의 무덤”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당한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피해는 조직이 경찰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그는 해당 글에서 경찰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임에도 병무청, 검찰청, 법원 등 다른 기관의 잡무를 대신 경찰이 맡아하고 있다며 경찰을 잡부에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김 경위의 글을 두고 순경 출신 일선 경찰관들을 중심으로는 “공감한다”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으나, 지휘부를 비롯한 간부들은 전체 내용에 동의하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트라우마 위험 등으로 특수직 공무원 가운데서도 자살률이 높은 직업군인 경찰이 처한 현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경찰의 자살률을 극단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라도 마음 동행 센터 상담소 인력을 늘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