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미싱 돌리던 고등학생 “지금 베컴부부 보다 부자되었죠”

켈리델리 그룹 CEO 켈리최
고등학생 때 홀로 상경
와이셔츠 공장에서 미싱 돌려
꿈 좇아, 일본·프랑스 유학
사업 실패 후 10억 빚 얻어

1985년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한 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른 아침부터 와이셔츠 공장에서 오후 늦게까지 미싱을 돌린 뒤 퇴근하자마자 야간 고등학교로 출석해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요. 그럼에도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그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전북 정읍에서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학교 진학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는 현재 유럽 10개국에 7백여 개 매장을 가진 요식 기업의 CEO가 됐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온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성공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진출처_조선일보

켈리델리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도시락 브랜드 ‘스시 데일리’를 운영하는 회사로, 주로 대형마트에 입점한 약 15제곱 미터의 매대에서 요리사가 직접 초밥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형태로 운영하는데요. 2016년 매출 4천억을 돌파한 이 기업은 현재 매년 5천억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이라면 한 번쯤 듣거나, 보거나, 먹어봤다는 켈리델리의 창업자는 켈리최인데요.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 프랑스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을 지금의 규모로 키워내 세계 명문 경영 대학원 교재에 켈리델리의 성공사례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켈리 최의 어린 시절은 장차 그녀가 자라 유럽 전역에 매장을 갖게 되기라는 것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편에 속했는데요. 고등학생 나이에 홀로 상경한 그녀는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스스로 벌었습니다.

그녀는 미싱을 돌리던 당시를 회상할 때면 그리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데요. 함께 일하던 친구와 버스를 타고 여느 때처럼 학교로 향하던 어느 날, 밥 대신 백설기를 먹던 친구가 떡이 목에 걸려 급작스럽게 세상을 등지게 되면서 그녀는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야겠다“라고 말이죠.

사진출처_이찌방유학

그렇게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그녀에게 가득해져 갈 무렵 켈리 최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켈리 최는 학교 졸업 후 명함 인쇄 공장에서 일할 당시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 디자이너가 너무 멋져 디자이너라는 꿈을 처음으로 품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다니게 된 복장학원에서 국내 대부분의 디자인이 일본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이죠.

일본 유학을 결심했을 무렵인 1980년대는 여권을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경제적 여건 역시 여전히 뒷받침되지 않았지만 켈리 최는 ”지금도 아르바이트해서 학교 다니는데 일본이라고 다를 게 무엇이냐”라는 생각을 갖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다니게 된 일본 복장학원에서 그녀가 깨달은 건 일본 디자인은 막상 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출처_이랑주TV

그렇게 그녀는 이번엔 ”일본에서도 살았는데 프랑스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프랑스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죠. 그녀가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라타서야 ‘봉주르’가 프랑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인 걸 알았다는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추진력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하는 일화 중 하나인데요.

이후 파리의 디자인 학교를 졸업해 그곳에서 디자이너로 한창 이력을 쌓아나가던 그녀는 한국 대기업을 상대로 광고 회사를 운영하던 친구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동업을 제의한 친구는 3개국어를 할 줄 아는 켈리 최가 회사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고, 그녀가 합류한 이후 회사는 9년간 운영되다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나이 마흔에 켈리 최가 떠안게 된 건 10억 원의 빚뿐이었죠.

켈리 최는 실패의 원인으로 눈앞에 있는 업무에만 몰두하는 근시안적인 태도와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다고 여겼던 자만심을 꼽았는데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티타임을 가진 뒤 커피값을 누가 내야 하는 것인가 눈치 볼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힘든 시기를 겨우 버텼다고 하죠.

월간 ceo

그렇게 그녀는 재기를 위해 다시금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아시아인이 외국에서 비교적 적은 자본금으로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끈질기게 고민한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마트에서 하는 요식업이었습니다. 원래 삼각김밥 사업을 하려 했으나 그러려면 10억 원의 비용이 드는 무균 공장이 필요해 즉석에서 스시를 만드는 사업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하는데요. 이 아이템을 생각해낸 이후 그녀는 시장조사를 위해 끈질기게 동네 마트를 찾았다고 합니다. 이외 사업·유통에 관한 책만 100권 이상 읽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먼저 걸었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멘토로 삼고 싶은 사람들의 인터뷰, 자서전을 모조리 찾아 읽은 뒤 “무조건 들이댔다”라고 전했는데요.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명한 사람은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버리되, 다만 센스 있게 다가가기 위해 그 사람의 비전·철학·약력을 달달 외운 뒤 메일을 보낼 필요성이 있다”라며 “진실 성이 통하면 제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시간 내 답을 해주게 돼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도시락 사업으로 미국에서 성공한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에게 경영방식을, 맥도날드 전 유럽 CEO 드니 하네칸에게 글로벌 시스템을, 프랑스 대통령이 중요 행사 때마다 섭외한다는 초밥 장인 야마모토 씨에게는 초밥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켈리 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관련 서적만 100권 넘게 읽고 초밥집에서 일해보기도 했다”라며 “카페에서 서빙조차 안 해본 사람들이 카페부터 차리려고 하는 건 순서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가정 형편, 사업 실패 등 각종 어려움을 딛고 유럽 전역에 매장을 둔 성공한 사업가 반열에 오른 켈리델리 그룹 켈리 최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환경을 탓하지 않고 꿈을 좇아 자신에게 기회를 스스로 안겨다 준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