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와 3위가 합쳐도 이기지 못한다는 유일한 ‘한국 제품의 가격’

한국 빵값 세계 최고 수준
한국에서 빵이 비싼 이유는?
국내 빵 시장, 기업 독점 상황이기도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탓에 친구들로부터 ‘빵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서모 씨는 퇴근 후 집 근처 베이커리 전문점에 들리는 게 일상입니다. 서 씨는 달달한 디저트 빵보다 담백한 식사 대용 빵을 좋아해 건강빵으로 불리는 통밀빵을 자주 먹곤 하는데요. 최근 들어 서 씨는 기분 좋게 빵을 담으려다가도 계산대에 서기 직전 도로 빵을 내려놓는 일이 잦습니다.

그는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한 동네 빵집인데도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다”라며 “가성비 생각하기 싫지만 국밥이 6천 원이라 생각하면 빵 먹는 횟수를 좀 줄여야 하나 싶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사실 빵값의 다소 높은 가격 책정에 불만을 품는 이는 서 씨뿐만이 아닌 텐데요.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더라도 한국의 빵값은 비싼 편입니다. 이번 시간엔 한국 빵값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올해 2월 국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1위인 파리바게뜨는 660개 제품 가운데 95개 품목의 소비자 가격을 평균 5.6% 올린다고 공지했습니다. 업계 2위인 뚜레쥬르 역시 이보다 앞선 지난 1월 90여 종의 제품 가격을 9%가량 인상한다고 밝혀 빵 애호가들의 불만을 터뜨리게 했는데요. 국내 소비자들은 다른 나라와 견주어 봐도 국내 빵값이 비싸다는 이유를 들어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2019년 발표한 ‘전 세계 생활비’ 보고서에 의하면, 서울에서 빵 1kg 사는데 드는 비용은 15.59달러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같은 조사 결과에서 2위를 차지한 뉴욕(8.33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드러난 것인데요.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이 자자한 일본 오사카와 비교하자면 격차는 3배로 벌어집니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이다음 해인 2020년 보고서에서는 빵값이 가장 비싼 도시로 뉴욕이 1위를 차지했지만, 이는 서울이 생활비가 가장 높은 상위 10개 도시 순위에서 밀려나 비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2020년 보고서에서 뉴욕의 빵 1kg당 가격은 전년도보다 다소 높아진 8.62달러로 2019년 10달러대로 집계됐던 서울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죠.

사진출처_연합뉴스

 

그렇다면 높은 물가를 자랑하기로 유명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유독 한국에서 비싼 값에 빵이 팔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빵 원재료의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빵류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원료로는 밀가루와 설탕을 들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밀가루는 무려 66.7%가량을 차지하지만 국내 자급률은 1%대에 불과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식용 밀 수요량은 연간 215만 톤에 달하지만 국내 생산량은 3만 톤에 불과한데요. 밀을 포함한 곡물자급률 역시 2011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외 백설탕의 국내산 사용 비중은 0%대에 머무르고 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빵 가격은 원재료 가격 변동에 따라 요동치는 일이 잦습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세계 곡물 가격 동향’에 의하면 시카고선물거래소에서 올해 2월 거래된 밀 1톤의 가격은 237달러로 전달 최저가 대비 36%가량 상승했는데요.

이는 남미 등 주요 밀 수출국의 작황 부진,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차질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쳐 벌어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빵 원료 중 국내 자급률이 가장 높았던 달걀마저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베이커리 업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빵값이 유독 비싼 이유를 비싼 원재료 탓만 할 순 없는데요. 밀 자급률이 국내와 마찬가지로 적은 일본은 빵 1kg당 가격이 5.63달러 수준입니다. 일본의 밀 자급률이 12%로 한국보다 높다는 것은 일본의 빵 가격이 국내보다 세배 가량 저렴한 이유를 설명하기에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는데요.

사진출처_연합뉴스

업계에서는 국내 빵 가격이 유독 높은 또 하나의 이유로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국내 베이커리 업계만의 독특한 유통 구조를 꼽습니다. 국내 빵 시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대형마트 등 소매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공장식 양산빵보다 소규모 제과점에서 판매되는 빵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즉 대부분의 사람이 빵을 사 먹으려 대형마트, 편의점으로 향하기보다는 베이커리 전문점으로 향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 2016년 기준 제과업계 매출 5조 9388억 원 가운데 소매유통채널의 매출은 4251억 원으로 전체 제과점 시장 매출의 7%에 불과했는데요. 일반적으로 개인 자영업자가 대다수인 베이커리 전문점의 경우 임대료, 인건비 등의 부담 탓에 대형마트에서 파는 양산빵 가격보다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진출처_연합뉴스

 

한편, 국내 베이커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시피한 일부 사업자들의 일탈행위도 빵값을 올리는 주효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현재 국내 빵 시장은 사실상 SPC그룹이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할인마트, 편의점, 슈퍼 등에서 판매된 빵 매출액 2047억 원 가운데 75.6%에 달하는 1549억 원어치의 매출이 SPC에서 발생한 매출이었는데요.

정부는 과도한 독점화는 적정한 가격 책정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경 SPC 그룹이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이유로 총수 및 경영진을 형사고발 조치하고 6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요.

공정위는 SPC그룹의 계열사인 ‘파리 크루아상’이 또 다른 계열사인 ‘밀다원’이 생산한 밀가루를 쓰는데 양사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중간에 ‘삼립’이라는 회사를 통해 거래함으로써 일종의 통행세를 챙겼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SPC그룹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만큼 아직 통행세 챙기기 관련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양산빵 시장의 4분의 3을 차지하다시피 한 SPC의 독점구조가 가격 경쟁을 저해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현재 식생활 변화와 1인 가구의 증가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국내 1인당 빵 소비량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KB 경영 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국내 베이커리 시장 동향과 소비 트렌드 변화’ 보고서에 의하면 2012년에서 2018년 사이 1인당 빵 섭취량은 단팥빵 1개를 기준으로 78개에서 91개로 증가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빵값이 유독 비싼 여러 이유들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한국인의 식탁에서 빵이 차지하는 범위가 넓어진 만큼 합리적 가격 형성을 위한 업계와 정부의 노력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